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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츄신구라(忠臣藏)” 시쥬시치시(四十七士) 연고의 땅을 돌아보자!역사 산책

오오이시 요시다까(大石良雄) 외 16인 충렬의 자취

습격 후 오오이시 구라노스케 요시다까(大石內藏助良雄), 요시다 쮸자에몬(吉田忠左衛門), 오노데라 쥬나이(小野寺十內), 하라 소우에몬(原總右衛門)을 포함하여 영주를 잃은 무사 17인이 맡겨진 히고 쿠마모토(肥後熊本)함 호소카와(細川)가의 저택의 터.

오오이시(大石)들은 다이쇼인(大書院) 앞 뜰에서 할복 자살했다고 알려져 그 뜰의 일부가 남아있고, 사방이 담으로 둘러 쌓여 적막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. (정내는 비공개입니다. 문의 틈새로 엿볼 수 있습니다)

주위는 타카마츠(高松) 중학교와 타카마츠노미야(高松宮) 관저에 우거져 있는 나무들에 가려 도심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조용합니다.

당시 지방영주 호소카와 쓰나토시(細川綱利)는 총 875명의 많은 부대를 보내 17명을 인수해 갔습니다. 그리고 자신이 직접 오오이시(大石)를 포함한 17명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.

충렬의 자취로부터 2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옛 호소카와(細川) 관저에 있었다고 하는 수령 수백년이라고 일컬어지는 거대한 모밀잣밤나무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. 높이 10.8m, 폭 8.1m의 거목으로 수복의 자취가 여기저기 보여집니다만, 영주를 잃은 무사의 충렬을 이야기하는 증인으로 이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습니다.

 
 
 

 

오오이시 요시다까(大石良雄) 외 16인 충렬의 자취
소재지: 미나토구(港區) 다카나와(高輪) 1-16-25
교통: 아사쿠사선(淺草線) 센가쿠지(泉岳寺)역에서 도보 5분

여기가 포인트!

이 땅은 호소카와(細川)가가 받기 전에는 가토 기요마사(加藤淸正)의 저택이였을때, 키요마사(淸正公)공을 모신 까꾸린지(覺林寺)는 여기서부터 걸어 3분 정도에 있습니다. 매년 5월 4일~5일의 키요마사공(淸正公) 대제는, 잎창포(葉菖蒲)가 들어간 “부적(가찌마모리:勝守)”를 배포합니다. 이것은 무운(武運)의 강했던 키요마사공(淸正公)을 닮아 “승부에 이긴다”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.

당일 경내에서 덴진자카우에(天神坂上)까지 많은 노점이 줄을 섭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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